고교시절, 다들 마찬가였겠지만 내게 있어서 가자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연애'였다. 그렇다. 이팔청춘 혈기왕성 테스토스테론이 정신없이 분비되어 우리에게 있어서 '이성'보다 더 큰 관심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짧은 인생을 정리하기보다는 죽기 전에 연애 한 번 해보자며 지나가는 여자에게 달려들 것이 자명한 얼간이들이었다.
"며칠 전 비가 엄청 왔던 날 있잖아. 걔랑 같이 우산을 쓰고 공원 잔디밭을 걷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야. 그래서 거기서 걔를 확 껴안고는..."
며칠 전,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5교시에 수업을 땡땡이치고 달려 나간 친구 덕배는 마치 훈장처럼 자신의 첫 키스에 대해 그렇게 장광설을 펼쳤다. 눈물나도록 부러웠다. 살짝 덥배의 입술을 한 번쯤 만지고 싶을 정도로.
과연 첫 키스의 맛은 어떨까? 덕배에게 물어보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하다고 했다.
지금으로 치자면, '맥심 T.O.P'의 TV광고에서 원빈이 신민아와 입맞춤을 할 때, 둘이 서로 느꼈던 바로 그런 낭만적이면서도 뭔가 멜랑콜리하고, 쑥스러워 손발이 구운 오징어처럼 오그라들면서도, 4월의 벚꽃처럼 눈부신, 뭐 그런 맛이 아니었을까? 알 수 없었다. 직접 확인해보지 않고서는.
결국 나는 첫 키스를 재수생이 되고 나서야 할 수 있었다. 단과학원에서 서로 노트를 빌려주다가 덜컥 눈이 맞아버린 그녀와, 종로 단성사 맞은편의 한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커피 한 잔이 서비스로 나오는 오므라이스를 막 먹고 난 다음이었다.
수줍은 듯 볼이 빨개진 내 옆에 능숙하게 자리 잡은 그녀. 이미 '첫'이 아니였던 그녀의 입술이 나를 덮쳤고, 기가 막힌 혀놀림에 나의 구강은 단숨에 농락당했다. 상상과는 조금 달랐다. 생각했던 만큼 환상적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눅진눅진하고 끈적끈적한 기분이었다.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는 어쩌면 내가 '당한 쪽'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기쁘기는 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은 복잡한 마음으로 그녀와 헤어진 후, 극장 앞 공중전화 박스에게 친구에게 전화했다.
"나 첫 키스 했다."
"진짜? 정말 미끌미끌한 게 해삼 맛이냐?"
그 녀석 덕분에 나는 내 첫 키스의 추억을 '해삼 맛'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아직도 녀석과 친구로 지내고 있다는 게 새삼 한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