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의 관문 진화하는 폴란드 광고
대홍 커뮤니케이션즈 기사입력 2010.01.11 12:00 조회 6400

거리상으로나 심리상으로나 우리와 정반대편에 있는 먼 나라 폴란드. 시장경제를 도입한 지 20여 년 만에 동유럽 비즈니스의 관문으로 성장한 폴란드 광고시장은 작지만 의미 있게 변하고 있다. 동유럽의 모든 길은 예술과 역사의 가치를 아는 폴란드로 통한다.

written by 김 준 범 ( 포 스 코 폴 란 드 법 인 )

환희와 독립을 상징하는 흰색과 붉은 색의 폴란드 국기에는 결백과 성실, 그리고 순결한 희생의 뜻도 담겨있다. 다른 나라보다 다양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폴란드의 광고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유럽연합에 스물여섯 번째로 가입함으로써 하나된 유럽의 주역을 꿈꾼다.

쇼팽, 퀴리 부인, 코페르니쿠스,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의 나라,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에서 우리에게 첫 승을 안긴 나라, 과거 북한과의 수교로 왠지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머나먼 동유럽 국가 중 하나가 바로 폴란드다. 폴란드의 겨울은 11월 혁명의 기억으로 시작된다.

안개 자욱한 잿빛 날씨와 낯선 풍경은 이방인의 외로움을 잊게 할 만큼 을씨년스럽다.

동유럽에 부는 한류 바람

폴란드에서 생활하며 우리와 이 나라에는 비슷한 역사적인 아픔이 있다는 사실에 정서적인 동질감을 느꼈다.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많이 받았고, 1795년부터 1918년까지의 123년간 지도상에서 폴란드라는 나라가 사라지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폴란드 크라코프 지역 근처에 위치) 수용소에서 벌어진 나치의 만행은 조선이 일제에게 받은 학대와 핍박을 상기시킨다.

1989년 시장경제 체제로 진입한 지 20여 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장년층에 남아 있는 사회주의적 사고와 생활 방식은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를 효율적으로 정착시키는 걸림돌이 된다.

브로츠와프(Wroclaw)는 폴란드 남쪽에 위치한 이 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교육, 산업의 도시다. 2005년 우리나라 기업이 처음으로 진출한 이후 도시 전체가 급격한 발전과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다국적 기업이 폴란드를 동유럽 진출의 시험 무대로 삼고 있다. 산업의 발달로 폴란드 근로자뿐 아니라 외국기업 주재원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인의 유입이 많아졌다.
폴란드 4대 도시 브로츠와프는 폴란드의 가전산업 중심지로 많은 외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브로츠와프에는 유명한 국제 학교가 있어 최근 우리나라 유학생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동양인은 이들에게 신기한 이방인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동양인이 등장하는 광고가 눈에 띌 정도로 많아졌다.

의류광고에 동양인이 메인 모델로 등장하거나, 환하게 웃는 우리나라 아기가 모델인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버스 정류장 광고는 행인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얼마 전에는 수도 바르샤바에서 한식과 우리 농산물을 소개하는 한국 음식 주간이 개최되었는데, 특히 막걸리와 배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례적으로 폴란드 최대 민간 방송 TVN에서 연일 광고를 내보냈으며, 최대 일간지 <가제타>에서도 홍보 포스터를 볼 수 있었다. 유럽에서 점점 동양권, 특히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과 영향력이 커지는 이른바 한류의 시작을 실감했다.
 


조금은 당혹스러운 폴란드의 중간광고

폴란드에선 TV 프로그램 방영 중 20~30분에 한 번씩 광고가 나온다.

우리나라 케이블이나 위성 방송에서처럼 ‘60초 후에 계속됩니다’라는 안내문구도 없이 정전이 난 것처럼 갑자기 방송이 중단되고 ‘REKLAMA(폴란드어로 ‘광고’ 라는 뜻)’라고 쓴 화면이 1~2초 나온 후에 몇 편의 광고가 방영되고 다시 프로그램이 이어지는 식이다.

유럽에서는 시간당 12분 미만의 중간광고를 법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느긋한 폴란드인의 성격 때문인지 이미 중간광고에 익숙해서인지 우리처럼 시청자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중간광고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좀처럼 볼 수 없다.

굳이 광고가 나온다는 안내 방송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케이블 방송이나 스포츠 중계를 제외하고는 프로그램 시작 전후로 광고가 나오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또한 폴란드의 광고는 내용 면에서 굉장히 과감하고 선정적이다. 우연히 한 속옷 브랜드의 광고를 보았는데 성인물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야한 장면이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폴란드의 광고는 우리나라보다 다양하지도 않고, 캠페인성 공익광고나 기업의 이미지 광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과 관련한 광고는 다양한 편이다.

저녁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광고 외에는 정보를 접할 별다른 방법도 없다. 프랑스 텔레콤의 Orange TV가 폴란드에서도 IPTV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TV광고는 정보를 얻기에 가장 유용한 매체다.

외국 자본 유입으로 시작된 광고의 변화

유럽 국가의 대부분이 그렇듯 폴란드에도 애견 인구가 많다. 집집마다 개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개를 가족처럼 여기기 때문에 우리나라 광고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애완견 사료광고를 자주 볼 수 있다. 브로츠와프를 찾는 관광객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도살된 동물을 위한 거리’이다.

소·돼지·닭 등 가축을 위로하는 동상이 있는 이곳은 브로츠와프의 명소가 되었다.

최근 들어 경제 사정이 좋아지면서 무선 통신광고와 휴대폰·맥주·식품·복권·은행 대출 광고 등 소비와 지출을 유도하는 광고가 자주 눈에 띈다.

식품광고에는 가족이 자주 등장하는데, 광고 제품 대다수가 인스턴트식품이다. 인스턴트 케이크 파우더, 인스턴트 수프, 냉동 피자, 냉동 야채 등. 이런 광고가 많은 이유는 폴란드의 식습관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곳 사람들은 간단하게 조리해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호한다.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나오는 주류광고도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유럽의 물은 석회질 함량이 높아 먹는 샘물을 사 먹어야 하는데 먹는 샘물 1.5L의 가격이 맥주 한 캔과 비슷하다. 그래서 웬만한 성인 남자는 물 대신 맥주를 마신다.

폴란드인에게 맥주는 ‘술’이 아닌 ‘물’이다. 다른 제품에서는 폴란드 제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유독 맥주만큼은 메인드 인 폴란드가 많다. 폴란드가 자랑하는 맥주 티스키에는 레스토랑이나 퍼브(Pub) 출입문의 커다란 문고리가 생맥주 잔과 모양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손잡이에 스티커를 부착한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러 퍼브의 문을 열 때 만나는 티스키에 스티커는 소비자의 티스키에 선택으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 무더운 여름날 TV를 점령한 맥주광고를 보면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의 유혹을 물리치기란 쉽지 않다.

외국 자본이 유입되면서 최근 폴란드에도 아파트 건축 붐이 일고 있다. 거리마다 아파트 건축과 분양 광고판이 즐비하다.

폴란드의 아파트도 건물의 뼈대만 갖춰지면 분양을 시작한다. 겉모습만 아파트이지 내부는 기둥과 옆집과 경계벽만 있을 뿐 방문도 없고, 전기 공사도 되어 있지 않다.

폴란드는 우리나라와 달리 집을 분양 받은 사람이 직접 내부 인테리어를 해야 한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 우편함에는 우리나라처럼 아파트 내부 인테리어 제품광고 전단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전단을 보고 집주인은 자재를 사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공사를 하는 점은 다르다.

밤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는 폴란드의 밤거리는 화려한 조명과 네온, 귓가를 울리는 음악 소리를 듣기 어렵다.

간판도 가게이름이 눈에 잘 보이도록 치장하는 게 아니라 가게 입구 구석에 은은한 불빛을 비춰 영업 중이라는 사실만 알린다. 간혹 심야 영업을 하는 나이트클럽이나 카지노 등에서 반짝이는 간판을 달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고 밋밋하다.

조화 속에 진화 중인 폴란드의 광고

지난 3년간 느낀 폴란드의 광고에서 주목할 만한 큰 변화는 양적 변화다. 각종 광고매체를 통해 접하는 광고의 수가 부쩍 늘었다. 특히 전단광고의 증가는 현지인도 놀랄 정도다.

외국어 학원, 맥도널드 행사 등이 전부인 전단에서 이제는 스파나 마사지, 음식점 등 전단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폴란드인은 전단을 거리에 마구 버리거나 전단 알바생을 무시하고 지나치지 않는다.

전단을 거절할 때도 정중하게 ‘니에 징쿠예(폴란드어로 No, thank you.)’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폴란드 식이다.

건물 전체를 도배하고 있는 간판과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인도를 무단 점령한 간판, 그리고 요란한 옥외광고는 이곳에서는 찾기 어렵고 브로츠와프에서는 아예 전광판조차 볼 수 없다.

시내에 고층 건물도 없을뿐더러 몇 백 년의 역사를 지닌 건물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생각된다.

아직은 우리나라나 서유럽의 광고에 비해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제품을 직접적으로 홍보하는 데 그치는 광고가 주류를 이루지만,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폴란드인의 정서가 담긴 세련되고 감각적인 광고가 등장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홍 ·  광고시장 ·  외국 ·  폴란드 ·  시장경제 ·  유럽 ·  비즈니스 ·  역사 ·  예술 ·  맥주 ·  가제타 ·  동양권 ·  중간광고 스티커 ·  전단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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