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책 한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우리나라의 전체 성인의 30%나 된다는 조사가 있더군요. 한심스럽다 여겼는데 제가 점점 그렇게 되어 갑니다. 몸이 피곤한 건 사실이나 어쨌든 주중엔 한 페이지도 못 읽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새삼스레 강철같은 의지를 발동시킬 밖에요. 한 장이라도 좋으니 매일매일 읽자고 결심하고 책을 듭니다. 이럴 때 좋은 것이 소설입니다. 지친 몸에 눈이 감겨 올 때에도, 소설이 가진 이야기의 힘에 기대어 페이지를 넘기게 되죠.
몇 달 전에 사 놓았던 책을 펴 들었습니다. 제목은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무슨 연유에선지 저는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해 버렸는데, 실상 저는 추리를 별로 즐기지 않으므로 이 소설은 손에 들기까지 몇 달은 그냥 책장안에 있었습니다.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은 어찌 하다가 프랑스 파리에 살게 된 미국인 저널리스트가 동네 피아노 공방에서 중고 피아노를 구입한 뒤 피아노와 음악에 다시 빠져 드는 이야기입니다. 소설이라기엔 이렇다 할 서건이나 클라이맥스라 할 대목이 없으므로 좀 지루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대단한 걸 갖거나 이루지 않더라도 충분히 아름다고 즐거운 이생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기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다 릭고 나니 저를 되돌아 보게 되더군요. 어릴 적의 저는 '기록'과 '성취'에 경도된 사람이었습니다. 최초로 무얼 이룬다는 것, 혹은 자신의 힘으로 거둔 성취에 대한 이야기가 저를 흥분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런 흥분이 저를 아?로 나아가게 했고요. 내 힘으로 무얼 해낸다는 기쁜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저를 움직이게 한 에너지이고 추진력이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젊어서 무얼 이룬 사람보다 나이 들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삶도 그 쪽으로 길이 나 있으리라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 작가 황석영의 발언도 저의 생각과 느낌을 응원하더군요. 육심이 넘어 영어 공부를 새로 시작했는데, 젊었을 적 읽었던 소설을 영어 영문으로 읽고 싶어서라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는 맛보지 못한 다른 종류의 기쁜이 인생엔 있는 것 같았고, 저도 그렇게 기쁘고 싶다는 느낌이 최초로 제게 왔습니다.
지금까지 중년의 생을 살면서 후회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즐기는 법을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받아 든 숙제를 잘 해야 한다는 부담과 긴장에 저를 모조리 내주었습니다. 그러니 좋아서, 즐거워서 하는 쪽엔 영 서툴렀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것을 책임감이라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런 생각으로 서성이는 제게 이 소설의 울림은 크더군요. 아이를 둘씩이나 둔 중년의 남자가 그저 좋아서, 음악의 기쁨에 젖기 위해서 새로 피아노를 들이고 레슨을 받는 소설을 무더운 한 여름에 더운 줄 모르고 흐뭇하게 다 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저도 어릴 적 배우다 그만둔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었스비낟. 그러나 생각뿐이었죠. 혹은 나중으로 미뤄놨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소설 속 그 미국 남자는 실제로 시도했고 그래서 생의 기쁨 하나를 새로 건져 올립니다. 일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보고 싶을 때, 다른 박자에 몸을 싣고 싶을 때 읽어 보시라고 추천합니다. 멋지게, 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코멘트와 함께요.
우리는 종종 낙이 뭐냐고 묻곤 합니다. 퍼포먼스를 내고 쌓는 것 외에 인생엔 다른 즐거움이 있음을 이 질문은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낙은 무엇인지요? 무엇을 할 때 기쁘고 행복하신지요? 어떤 때 기쁘고 어떤 대 행복한지를 아는 것, 즉 자신이 순정을 다해 좋아하는 것이 무언지 않다는 것은 곧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과 동의어가 됩니다. 이래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평생의 공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