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요조’의 청춘 에세이: 조용한 공사현장
HS Ad 기사입력 2021.03.17 12:00 조회 2361
 
  

 책방에서 일을 마치고 이종수(애인)와 퇴근하면 종종 집은 어수선해져 있다. 형(고양이)들 때문이다. 소소하게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물건이 떨어져 있거나 마스크의 귀에 거는 끈이 죄다 끊겨있다거나 하는 정도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의 어질러짐일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일에 더 예민한 사람은 언제나 나보다 이종수이다. 어질러진 집을 마주하면 나는 주로 웃는다. 그냥 너무 웃긴 것이다. 얼마나 신이 나게 놀았으면 집 꼴이 이렇게 될 수 있는 걸까, 거친 밀림을 헤쳐나가듯 소파를 뛰어넘어 다녔을 형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껄껄거리는 나에 반해 이종수는 정색하고 화를 낸다. 나한테 단 한 번도 내 본 적 없는 목소리로 형들에게 야! 라고 외치는 이종수의 음성을 들으면 아무 잘못 없는 내 가슴이 다 철렁하고 심장이 펄덕거린다. 에이 지겨워, 진짜 말 더럽게 안 들어 처먹어, 아우 지겨워, 독한 혼잣말을 내뱉으면서 어질러진 집안을 신경질적으로 정리하는 이종수의 모습은 꼭 어떤 장면을 불러온다.
빈틈없이 어질러져 있던 한 방. 
잠시 뒤 들어서는 백기녀. 
순식간에 인상을 구기고 소리를 지르는 백기녀의 얼굴. 
그리고 엄마가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나. 
그때의 나는 몇 살이었을까. 네 살, 아니면 다섯 살. 그 기억에서 가장 골때리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내가 당시 그 어질러진 방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방 문을 열고 백기녀가 등장하던 찰나, 내 가슴 속에는 ‘대단하지 엄마! 이것 좀 봐, 전부 내가 해 놓은 거야!’ 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 벅차오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예상(“아이구 우리 수진이가 이렇게 해놓았어? 어떻게 방바닥에 이렇게 빈틈 하나 없이 물건들을 늘어놓았을까? 여기는 과자 부스러기를 막 뿌려놓은 거야? 너무 대단하다!”)을 깨고 백기녀가 보여준 행동은 이종수와 같았다. 소리를 질렀고, 뒤이어 어질러진 집안을 신경질적으로 정리하면서 연신 투덜거렸다. 그 투덜거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크게 내지르던 외침보다 더 구체적으로 무섭고 아픈 말이었을 것이다. 
여느 때처럼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반가움으로 달려 나왔는데 갑자기 불같이 성을 내는 커다란 보호자를 피해 소파 뒤에 숨은, 형들의 영문을 모르는 얼굴을 보았다. 화를 내는 엄마를 보던 어린 시절의 내 얼굴이 저랬을까? 한번은 갑자기 서러움이 솟아 울컥하느라 떨리는 목소리로 이종수에게 소리친 적이 있다.
형들은 아무것도 몰라. 네가 왜 화를 내는지, 자기네들이 뭘 잘못했는지, 형들은 아무것도 몰라.
      

  

 동시에 나는 이종수와 백기녀 역시 이해한다. 
내가 발 디딜 틈 없이 어질렀던 그 작은 방은 우리 집 전체와도 같았다. 단칸방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 방은 나에게 놀이터였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온 백기녀에게는 서둘러 등을 대고 눕고 싶은 공간이기도 했다. 쾌적하고 깨끗한 방을 어지럽히는 일을 반복하는 생명과 매일 사는 일은 그 생명을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는 일과 별개로 지겹고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그 시절의 백기녀는 아직 이십 대였다. 혈기왕성한 동시에 게으른 나이. 가끔은 씻지도 않은 채로 아무것도 안 하고 눕고만 싶었을 텐데. 가끔은 그 방으로 돌아오지 않고 밤새 어딘가에서 더 놀고 싶은 적도 있었을 텐데. 꼬박꼬박 더러운 방을 치우고 나갔다가 또 다시 더러워져 있을 방으로 꼬박꼬박 돌아와야 하는 백기녀는 얼마나 여러 번 숨 막혔을까.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나의 입장 때문에 매일의 집과 생명관리는 자연스럽게 이종수의 몫이 크다. 이것저것 혼자 부지런을 떨어보지만 함께 사는 털 많은 두 생명은 집안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채로 털만을 펄펄 날릴 뿐이다. 그야말로 가사노동이 밑 빠진 물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이종수는 뼛속 깊이 실감하며 생활한다. 며칠 만에 집에 온 내가 바닥에 털이 많이 보인다고 생각없이 말하면 ‘아침에 청소기 돌렸는데도 그래’라고 대꾸하는 목소리는 억울함 때문에 무겁고 날카롭다. 형들의 툰실한 궁둥이를 턱턱 때려주며 예뻐할 줄만 아는 나에 비해 매일같이 형들의 밥을 주고 화장실 모래를 갈고 털을 치우고, 동시에 인간이 쓰는 화장실과 인간이 먹는 밥그릇도 치우면서 사는 이종수가 보는 어질러진 집안은 내가 보는 것과 분명히 다른 세계일 것이다. 
    
예전에는 이해심을 기르기 위해서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인간극장도 챙겨보고 그랬던 것 같은데 하루하루 쌓인 경험치가 제법 많아진 탓인지 이제는 종종 노력 없이 이해심을 얻는다. 그냥 이종수만 쳐다봐도 지난날의 엄마가 저절로 이해가 되고 키우는 고양이를 보기만 해도 어린 시절의 내가 이해되고 말이다. 이해’해주려고’ 노력할 때는 손해 보는 기분만 들어 싫었는데 이렇게 저절로 이해를 획득하니 좋기만 하다. 이 이해심은 내 마음속에서 신속하게 공사의 현장이 된다. 그리고 지난 내 인생의 조금씩 낡고 못났던 부분을 조용하게 보수한다. 
       

        

이종수 역시 나를 이해하는 경험을 하는 중이다. 
생활과 일을 함께 하는 파트너로서 집과 책방에서 나에게 지시만 받던 이종수는 책방에 다른 직원들이 생기면서 이제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려야 하는 입장이 되자 놀랍게도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 이제야 신수진이 날 답답해했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잘하고 싶지만 마음만큼 되지 않는 직원들의 답답한 마음에 대해서도 이종수는 동시에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보다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답답함일 테니까 말이다. 
이종수의 가슴속에서도 지금 무음의 공사가 한창이겠구나. 나는 이종수의 말에 예의 껄껄거리는 웃음으로 화답하며 짐작한다. 동시에 이 귀한 이해심을 앞으로도 노력 없이 계속 얻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일단 결심한 것은 다음과 같다. 열심히 살 것. 매 순간 분명하게 깨달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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