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 3] ADFEST 2018 [TRANSFORM]
광고계동향 기사입력 2018.06.18 12:00 조회 3363
 


올해 아·태 광고제의 주제는 ‘Transform’, 굳이 태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요 몇 년 사이 어느 콘퍼런스에서든 자주 듣고 있는 주제였다. 그래서 빅데이터와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프로그램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태광고제에서는 기술이나 도구가 아닌 가치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가장 두드러진 화두는 역시 ‘다양성과 페미니즘’. 숨어있던 여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광고계 역시 변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Getty Images에서 온 연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팔렸던 이미지를 분석하며, 광고계가 바라는 여성의 이미지가 Pretty Woman에서 Gritty Woman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색량으로 본다면, ‘Woman+Hero’는 105% 증가, ‘Woman+Grit’는 90% 증가, ‘Heroin’는 80% 증가했다고 한다. (2017년/2016년의 비교, Getty Images가 매년 발표하는 이미지 트렌드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Getty Images는 작년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포토샵으로 후보정을 한 모델의 이미지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큰 손해를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변화에 대응하는 회사를 넘어 변화를 만들어가는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용기가 필요하다. 강연이 끝나고 잠시 연사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는 작년에 서울에 왔을 때 옥외광고에 여자 모델들의 깎고 닦은 이미지가 매우 많아서 놀랐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곧 바뀔 것이라고 대답하고 돌아서면서, 국내 광고대행사 중 한 곳이 모델의 이미지를 후보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졌다.
BBDO India에서 온 젊은 여자 기획자는 본인이 기획한 세탁세제 Ariel 광고를 소개했다. 카피는 “Why is laundry only a mother’s job?”. 인도 여성들의 과중한 가사 부담을 이슈로 남자에게 빨래하자고 권유하는 내용이다.
 
흥미로웠던 점은 광고의 내용이, 아버지의 시선으로 불평등한 딸과 사위의 관계를 바라보다가 아버지 스스로 빨래를 시작하면서 사위에게도 변화를 은근히 요구하는 것이었다. 가부장제 문화권에서 남편의 행동을 바꾸려면 아내의 목소리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남자인 장인의 목소리여야 더 설득적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같은 페미니즘을 지향하더라도 유럽이나 미국과 다른 상황에서 출발하고 다른 전략으로 접근해야 하는 아시아의 페미니즘 콘텐츠를 접하게 되어 좋았다.

영국의 D&AD에서 온 연사는 41년 경력의 원로 광고인이었다. 그는 광고계에 예전보다 유능한 젊은 인재들이 많이 유입되지 않는 것을 문제로 짚으며, 훌륭한 인재들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는 광고계가 다시 매력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들이 원하는 것은 워라밸을 넘어서 가치를 심어주는 회사라고 말하며 과거에는 “Doing good”만 갖추면 가고 싶은 회사였지만 현재는 “Doing good by doing well”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가치 있는 광고대행사가 되기 위해 D&AD가 찾은 방법 중 하나는 교육이었다. 실제로 D&AD에는 카피라이팅, 광고주 매니징, 디지털 콘텐츠 제작, 프레젠테이션까지 광고 실무자를 위한 흥미로운 트레이닝 코스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오늘의 스타에게 배우는 내일의 기술”이라는 모토로 현직 광고인들이 강의 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원데이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강의료가 80만 원을 훌쩍 넘는 것이 어쩐지 신뢰가 갔다(?).
 
얼마나 훌륭한 프로그램인지는 들어봐야 알겠지만, 주니어부터 시니어까지 대부분의 광고인이 배움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D&AD의 시도에서 광고대행사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해야 하는 일 중에는 교육 사업도 있다는 희망도 보였다.

Workshop : 만들고 합치고 바꾸는 것



아·태광고제에는 강연 외에 참여형 소규모 워크숍 프로그램도 몇 가지 마련되어 있었다. 내가 신청한 워크숍은 <Collage Experiment>였는데, LA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포토그래퍼가 진행을 했다. 제목 그대로 미술 시간에 했던 것처럼 콜라주를 해보는 것이 었는데, 3명씩 테이블에 둘러앉아 진행자의 말에 따라 쌓인 잡지와 신문, 엽서들에서 이미지를 찾아 찢어 붙이고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순서는 이렇다.
[얼굴을 붙이세요 → 단어를 붙이세요 → … → 세모를 그리세요 → 가장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고르세요 → 그것을 오른쪽 사람에게 건네세요 → 그걸 내 도화지에 붙이세요 → … → 단어를 반으로 찢으세요]
순서대로 자신의 작품 활동에 몰두하던 각자가 다 함께 탄식을 지른 때가 있었는데, 바로 ‘다른 사람이 건넨 이미지를 내 도화지에 붙여야 할 때’였다. 누구도 옆자리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이미지를 내 소중한 도화지에 붙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게 타인의 생각이 더해져서 더 이상 나만의 세계가 아닌 도화지를 다시 가이드라인에 따라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전보다 힘겨웠다. 진행자는 이 단계가 광고인들이 가장 어려워하지만 의외로 정말 좋은 것이 탄생할 수 있는 단계, ‘협업’이라고 말했다. 협업의 대상은 팀원일 수도 있고, 광고주일 수도 있는데 그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 별로라고 생각하는 타인의 의견이 타인에게는 너무 중요한 아이디어라는 것을 명심하고, 마음을 열고 일하라고 했다. 두 시간 가까이 종이를 찢고 붙이며 알게 된 것이 어쩌면 너무 뻔한 결론이라서 허탈할 지경이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하는 환경에서 매일 일어나고 매일 실수하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심어준 워크숍이었다.

Winners : 이집트와 일본의 활약

이번 아·태광고제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집트가 참석했고 필름 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집트가 아시아였었나 헷갈려서 찾아봤다. 이집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걸쳐서 위치하는데,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지만 문화/종교적으로는 중동 아시아에 속해서 결론적으로 아시아라고 말한다고 한다. 음?) 어쨌든 이집트에는 작년에 엄청난 국가적인 경사가 있었는데,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또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이집트는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콩고를 꺾고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음?) 이집트의 이런 유연한 사고는 이번에 대상을 탄 Orange 통신사의 광고에도 그대로 드러나서, 이집트 국민의 터질 듯한 기대감을 유머러스하게 잘 대변해줬다.
광고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들이 잔뜩 나와서 랩을 하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월드컵 진출만 오매불망 기다려온 축구팬들이다. 28년 만에 기적적으로 기회를 잡았으나, 문제는 이 축구 광팬들의 몸이 쇠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 축구팬들이 이집트 대표 선수들을 향해 조곤조곤 협박한다. “28년 기다렸어. 4년 뒤에 나는 죽고 없어. 기회가 또 있다고 말하지마. 나에겐 이번이 마지막. 그러니까 잘해라. 알았지?”


일본은 이번 아·태광고제에서 가장 활약이 큰 나라였는데, 무려 7개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Branded Content Lotus, Design Lotus, Film Craft Lotus, Innova Lotus, Outdoor Lotus, Print Craft Lotus, Grande for Humanity 부문)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Print Craft 부문에서 대상을 탄 광고였다.

일본의 카나자와 고등학교에서는 해마다 ‘전국 고등학교 스모대회’를 개최하는데 그 역사가 101년이 됐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아마추어 스모대회이지만, 젊은 세대들은 이제 스모를 고루하고 지루한 스포츠라고 생각해서 해마다 그 인기는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하쿠호도는 스모의 낡은 이미지를 확 바꾸기 위해 여고생 스모선수들을 모델로 인쇄 광고를 만들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고등학교 스모 대회가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고등학교 스모 대회 광고를 이런 대형 광고대행사가 만든다는 것도 놀라웠다.
스모계의 비주류인 여자 스모선수들을 주목했지만 (여자 스모선수가 있는 줄도 몰랐다.) 이 광고가 이번 아·태광고제의 주요 화두였던 페미니즘을 말하는 광고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펄럭이는 교복 치마에 시선을 가게 하는 대신에 진짜 스모복을 입은 스포츠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보는 순간, 박력 있는 자세와 아름다운 아트웍 때문에 ‘스모를 한번 해보고 싶다.’, ‘스모를 한번 보러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렬하게 든 것도 사실이다.

이번 아·태광고제에는 Radio 부문의 대상과 금상이 없었다. 상을 발표하며 사회자가 말했다. “아쉽게도 라디오 후보작에서는 수준 이상의 작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년에 출품될 라디오 광고들을 기대합니다. 라디오는 죽은 매체가 아닙니다. 다만 잠들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오히려 라디오가 진짜 죽은 것 같아서 슬퍼졌지만, 이 말이 나를 비롯한 수상 경험이 없는 광고인들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잠들어 있을 뿐이에요.” 푹 잤으니까 이제 좀 깨어나고 싶다.
ADFEST 2018 ·  TRANSFORM ·  노윤주 ·  광고계동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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