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History] 일본 광고회사 덴츠는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나?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 덴츠(Dentsu, 電通) 생일은 1901년 7월 1일이다. 올해 창립 113년을 맞는다. 창립 당시의 이름은 일본전보통신사(日本電報通信社, 이하 덴츠)였다. 한국의 광고 발전 과정에서 덴츠만큼 한국 광고에 큰 영향을 끼친 회사는 없을 것이다.
덴츠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06년이었다. 사무소는 일본말로 시가지 이름을 바꾼 아사히마치(旭町)인데 충무로 부근이었다. 그 이유는 현재 소공동, 명동, 충무로, 퇴계로 일대가 일본인 중심 상권이었기 때문이다. 조선통감부는 남산에 있는 한때 중앙정보부 건물, 지금 한국의 집 (Korea House)은 조선총독 다음 제2인자인 정무총감의 사택 자리였다. 그리고 신세계 백화점은 미츠코시(三越) 백화점, 한국은행은 조선 은행, 중앙우체국은 역시 중앙우체국, 롯데 영 플라자는 쵸지야(丁子屋), 충무로는 혼마치(本町)로 일본인 중심상가였으니 말하자면 주요 일본 광고주들이 이 지역에 모여 있던 셈이다<그림 1>. 다음의 ‘덴츠와 한국 광고’에 따라 덴츠가 한국 광고계와 어떤 관계였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통신과 광고대행 겸영 관례는 프랑스에서 시작했으나 1868년 일본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주요 통신사가 이러한 겸영을 했다. 덴츠도 마찬가지로서 한국 최초의 광고대행사가 되었다. 1909년에 현재는 신문연감으로 된 신문총람을 창간했는데 1920년대 중반 이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수록했고 그 가운데는 두 신문의 광고량이 업종별로 나와 있어서 금액은 아니나 해방 전 한국 광고에 관한 소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1911년에 ‘조선신사명감’을 발행했는데 이 연감은 한일합병 무렵의 한국 사회를 움직이던 주요 인물에 대한 자료가 된다<그림 2>. 이듬해에는 ‘조선 상품과 지리’라는 책을 출판하는데 출판은 일본에서 했다. 덴츠라는 이름이 들어 있는 전면광고가
동아일보에 처음 게재된 것은 1922년이었다<그림 3>. 1924년에 게재한 광고 가운데는 현상 모집광고가 있는데 게재한 광고주의 광고를 보고 응모하는 광고로서 처음 실시한 사례이다. 1929년에는 아마도 한국 최초였을 미인선발대회 결과를
발표하는 전면광고가 조선일보에 게재되는데 1회로 끝났다. 1927년 이후는 덴츠 사장 일행의 서울 방문과 여러 신문사 예방이 드문드문 보도되고 있다. 일본 정부 시책에 따라 1936년에 덴츠는 광고대행을 전업으로 하고 통신업무는 중지했다.
1937년 조선일보가 한국 최초의 ‘광고강좌’를 주최했을 때에는 덴츠의 이사가 강사(4명)로 와서 발표하고 그 내용이 뒤에 연재된다<그림 4>. 1940년 8월에 조선, 동아가 강제 폐간된 얼마 뒤에 덴츠의 지방과장 요시다 히데오(吉田秀雄)가 한국을
방문하는데 그는 일본 내의 모든 지방신문, 한국, 대만, 사할린, 만주 등의 일본어 및 그 지역 언로로 된 신문에 광고게재를 총괄하는 사람으로서 1947년에는 약관 40대에 덴츠 사장이 되어 일본 광고의 현대화에 지대한 공을 세우게 된다.
해방 이후 덴츠 임원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 것은 한일 국교가 재개된 1965년 이듬해에 당시 합동통신사 사장의 초청으로 덴츠의 전무가 방한해 2주간 체재하는 동안 여러 가지 광고대행에 관한 지식을 전수했다. 그리고 1967년 1월에는 드디어 합동통신사와덴츠가 업무제휴계약을 맺기에 이른다. 말하자면 한국 최초의 합작(자본 투자는 없음) 광고회사가 창립된 셈이었다. (합동통신사는 ‘합동광고’라는 광고대행사를 창립하는데 실질적으로 광고대행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회사가 되었고 뒤에 오리콤이 된다. 1969년에는 덴츠의 후원으로 국제광고 Festival이 2회째 개최된 기록이 남아 있다<그림 5>. 이 밖에도 덴츠가 한국 광고발전을 위해 이바지한 일은 수다하게 많다. 다만 연구의 미비로 정리된 기록은 없다. 덴츠가 한국에서 최초의 광고대행업을 시작한 뒤 90년이 되는 1996년에 덴츠는 한국지점을 설립한다.
기록에 남아 있는 일들만을 놓고 살펴본 덴츠와 한국 광고의 관계는 이상과 같으나 덴츠가 미친 영향은 많다. 1969년 한국광고비 조사 개시는 덴츠에서 배운 방법으로 합동광고가 시작했다<그림 6>. 즉 광고를 대행하려면 우선 한국의 광고시장의 규모를 알아야 한다는 이유이다. 제일기획의 초기 광고연감을 보면 국제부문 광고자료/서적은 덴츠 광고연감 자료에서 옮긴 것이다. 꼭 덴츠의 영향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지금 한국 신문광고요금표를 거슬러 올라가 살피면 일본(혹은 덴츠)
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아시아 광고대회나 광고상 제도, 광고 업종별 분류, 초기 합동광고의 조직과 명칭 등에도 역시 덴츠의 영향이 컸다. 1973년에는 처음으로 12명의 한국 광고인이 덴츠가 주선한 1주일 광고 세미나, 현장 방문 교육을 주최해 주었다. 덴츠의 한국 광고 발전을 위한 협조는 이 밖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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