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ㅣ 편집실
매분, 매초 치열하게 살아갈 나이에 훌쩍 여행을 떠난 이유는?
어릴 적부터 세계여행에 대한 꿈이 있었다. 다만 나이를 먹고, 일에 몰두하면서 그것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끼곤했다. 그렇게 꼬박 8년을 야근생활자로 일하다 보니 좀 숨도 돌리고 내게 선물도 주고 싶더라. 인생을 길게 보기로 했다. 80년 산다 치면, 그 중 1년 정도 100퍼센트 나만을 위해 투자해도 좋을 것 같았다. 쉼이라기보다 내게 주는 선물이자 투자였다
유럽이 아닌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일주를 하셨는데, 여행지 선택의 기준은?
기준은 명확했다.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곳” 이었다. 변화가 너무 빨리 진행되는 21세기에,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세렝게티. 점점 면적이 좁아지고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들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어느 정도 사회가 완성된 형태를 가진 유럽과 북미는 그래서 제외시켰다. 개인적으로 ‘선진국’의 편리하고 모던한 것에 별로 매력을 못 느끼기도 한다. 물론 일정과 비용의 문제도 있었다. 거긴 비싸니까.
372일간의 여행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첫째로 시각의 전환에 도움이 된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내가 견고하게 갖고 있던 상식이나 편견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들을 한다. 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면 ‘Yes’라고 알아듣는 인도사람들처럼 말이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다는 생각으로 유연하게 뒤집어 보는 것이 한결 쉬워졌다.
두번째로는 스스로에게 더 많은 스토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으로 공감을 얻어야하는 카피라이터가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건 큰 도움이 된다. 그만큼 상상력의 여지도 많아진다.
여행 전과 지금, 달라진 점은?
자신감이랄까. 혼자 세계 한 바퀴도 돌았는데 말도 통하고, 문명의 이기(!)로 가득한 이곳에서 못할게 뭐 있나 하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다’라는 나름의 진리를 어렴풋이 깨우쳐 예전 같으면 화장실에서 입 막고 소리라도 질렀을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좀 줄었다.
광고주들에게 사랑 받는 비법은?
비법이랄 게 뭐 있나. 광고주는 맘에 쏙 들게 카피 뽑아오면 그게 제일 좋은 거지. 근데 아직은 능력이 모자라 그 단계까지는 아니고, 광고주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래서 그게 내 생각이랑 다르면 안을 두 개를 만든다. 광고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안과 광고인이 추천하는 안. 그리고 거칠지 않게 설득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광고는 무엇이며,
광고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조용하고 심플한 광고들이 좋다. 예전엔 재미있고 위트 있는 톡톡 튀는 광고에 눈이 갔는데 요즘엔 15초에 딱 하나의 메시지만 힘 있게 전달하는 광고들이 점점 좋아진다. 광고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버리면 더 좋은 광고가 나올 것 같다. 물론 어떤 수단을 쓰던 소비자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기본은 변함이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광고는 ‘유혹’의 상업적 다른 말이 아닐까.
삼십 대 초반의 광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
이제 스스로의 광고 스타일을 찾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나도 아직 헤매는 중이라 ‘우리 한 번 같이 찾아봅시다’ 라고 하고 싶다. 20대에 열심히 배웠고, 지금 새롭고 날카로운 무기를 준비해 40대가 되면 한번 크게 이겨봐야 하니까. 광고계의 ‘레퍼런스’ 문화를 함께 바꿔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