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지영 매니저|이노션
난 네가 누군지 몰라.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혹시 몸값을 원하는 거라면, 미안하지만 돈은 없다.
가진 게 있다면,
남들보단 조금 더 특별한 기술이 있어.
그걸로 먹고 살면서 잔뼈가 굵었고,
그걸로 너희 같은 놈들 여럿 골로 보냈어.
지금이라도 내 딸을 놔준다면 여기서 끝내겠다.
찾지도 않을 거고, 쫓지도 않을 거다.
허나 거절하면
반드시 찾아내서 내 손으로 널 죽여 버리겠다.
- 영화 <테이큰> 도입부 中 -
오랜만에 약 20년 전 액션영화 ‘테이큰’을 보았습니다. 영화는 LA에서 사랑하는 딸과 떨어져 살고 있는 이혼한 아버지가 파리에서 인신매매 조직에게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에펠탑이라도 부술 각오로 파리로 찾아가 범죄자들을 소탕하고 딸을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질질 끄는 요소 없이 거침없고 화끈하게 진행되는 이 영화는 ‘존윅’과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존 윅’도 훌륭한 영화지만, 도입부의 서사에서는 ‘테이큰’ 이 더 큰 울림과 몰입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는 도파민이 폭발하는 액션 영화인데, 전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리암 니슨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딸을 위해 목숨이라도 걸 수 있는 부성애를 강조하는 설정이 초반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소재이든, 도입부는 매우 중요합니다.”
도입부는 주인공이 왜 이런 액션을 하고, 악당들과 싸우는지, 왜 온 몸을 불사질러 먼 곳까지 찾아왔는지 명분을 제시해주는 단계 입니다. ‘납치된 딸을 구하는 아빠’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누구에게나 몰입감을 주는 스토리텔링의 소재였습니다. 테이큰 만의 서사, 주인공의 임팩트 있는 도입부 대사가 없었다면 딸을 찾는 파리로의 여정이 덜 드라마틱하게 보였을 지도 모릅니다.
KCC건설 스웨첸 “2020 문명의 충돌” 광고는 “결혼한 지 4년, 맞는 게 진짜 하나도 없어요”라는 대사로 시작합니다. ‘누구에게나 결혼생활은 충돌의 연속’이라는 공감 포인트를 명확하게 짚어냄으로써 스웨첸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부부의 성장기를 현실적이고 코믹하게 담아내고, 스웨첸이라는 아파트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스웨첸만의 서사 전달을 통해 집이 가지는 의미도 확장됩니다.
“스토리텔링의 효과는 광고 기획에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브랜드만의 서사를 개발하고, 몇 차례의 광고 캠페인을 통해 브랜드만의 이미지와 팬 층을 쌓아올리는 과정은 하나의 독자적인 지적재산권을 가지는 IP사업과 동일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광고업계에서 일할수록,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개발이 필수적임을 느낍니다.
시장 내 제품 자체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마케팅 전략으로 감성을 택하는 것은 쉬운 길처럼 보일 수 있으나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길입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공감 요소, 세계관 구축 등의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잘 만들어두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으며, 팬들 자체를 광고판으로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결국 훌륭한 기술이나 제품도 그 브랜드만의 서사가 없다면 흥행으로 연결되지 못할 것입니다. 훌륭한 액션도 서사가 없다면 매력이 없는 것처럼요. 호흡은 다르지만, 영화와 광고의 도입부는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