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현진 카피라이터 | 오리콤
‘대놓고 PC 카톡을 해도 눈치 보지 않는 회사’
‘하루 종일 유튜브만 봐도 뭐라고 하지 않는 회사’
즉, 딴짓을 해도 되는 회사.
광고회사를 광고해 보자면, 광고회사의 킬링포인트는 ‘정당한 딴짓’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학창시절 ‘딴짓’은 금기시된 행동이었다. 사회에서 ‘딴짓’ 또한 죄악시된 행동으로 여겨진다. 광고회사도 회사니까, 마찬가지일 줄 알았다.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자꾸만 딴짓 하는 게 죄책감이 들었던 입사 4개월 차 카피라이터는 이런 일기를 썼었다.
쇼미더머니를 보면 카피에 자꾸 라임을 넣게 된다.
한국사 공부를 하면 얕은 역사 지식을 집어넣는다.
노래를 들으면 노래 가사가 또 은근슬쩍 들어간다.
나는 아직 먹이 색깔에 따라 똥 색깔이 달라지는
달팽이 카피라이터지만 좋은 거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쓰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지.
- 2016.5.27.
8년 전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달팽이라며 자책하던 카피라이터는, 지금도 여전히 딴짓을 하며 키보드로 똥을 싸는 달팽이다. 요즘 즐겨 듣는 음악, 주말에 봤던 넷플릭스, 화장실에서 봤던 쇼츠들을 먹고 PPT 위에 똥을 싼다. 누군가의 시선에는 놀고먹는 놈팽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 자기만의 색을 찾아 먹는 달팽이라고 우겨보고 싶다. 좋은 광고는 꼭 좋은 걸 많이 공부하는 것에서 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오기도 하지만) 10대 소비자의 인사이트는 저명한 논문이나 기사가 아닌, 우연히 알고리즘에 걸린 쇼츠에서 찾기도 한다. 어떤 카피는 유명한 일본 인쇄 광고에서 힌트를 얻기도 하지만, 엄마와 나눴던 카톡 대화에서 건지기도 한다.
그 우연하고 특별한 경험의 힘을 알기에, 광고인들은 틈틈이 최선을 다해 딴짓을 한다. 무엇보다 딴짓에 최적화된 산업 구조도 한몫을 한다. 광고대행사라는 중간에 낀 포지션 때문에, 양쪽에서 대기 시간도 참 길다. 광고주의 컨펌(윤허)을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발주를 준 프로덕션의 작업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어떤 날은 기다림이 하루 일과의 전부인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한 팀원은 새로 나온 아이돌 MV를 감상한다. MV에 등장한 촬영 기법은 언젠가 비주얼 아이디어가 되어 회의실에 등장한다. 어떤 팀원은 새로 나온 AI 프로그램으로 노래를 만든다. 얼마 뒤, 아티스트와 콜라보 하는 아이디어에 가이드 음원으로 풍성함을 더해준다. 딴짓의 시간들이 깊어지고 숙성되어 갈 때, 그것들은 더 이상 딴짓이 아니게 된다.
그 우연하고 특별한 경험의 힘을 알기에, 광고인들은 틈틈이 최선을 다해 딴짓을 한다. 무엇보다 딴짓에 최적화된 산업 구조도 한몫을 한다. 광고대행사라는 중간에 낀 포지션 때문에, 양쪽에서 대기 시간도 참 길다. 광고주의 컨펌(윤허)을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발주를 준 프로덕션의 작업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어떤 날은 기다림이 하루 일과의 전부인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한 팀원은 새로 나온 아이돌 MV를 감상한다. MV에 등장한 촬영 기법은 언젠가 비주얼 아이디어가 되어 회의실에 등장한다. 어떤 팀원은 새로 나온 AI 프로그램으로 노래를 만든다. 얼마 뒤, 아티스트와 콜라보 하는 아이디어에 가이드 음원으로 풍성함을 더해준다. 딴짓의 시간들이 깊어지고 숙성되어 갈 때, 그것들은 더 이상 딴짓이 아니게 된다.
딴짓의 정당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개인의 딴짓이 아이디어의 단서가 된다면, 타인의 딴짓으로 우리의 아이디어는 더 딴딴해 진다. 통상적으로 광고대행사 제작팀에서 카피라이터는 글을 쓰고, 아트디렉터는 비주얼을 만든다. 하지만 그들은 가끔, 사실은 꽤 자주 딴짓을 한다. 아트의 딴짓은 카피들은 못 쓰는 말랑한 카피가 되고, 카피의 딴짓은 전에 보지 못했던 맹랑한 비주얼이 되기도 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직무에만 집중했다면 얻지 못했을 귀한 결실이다. 실제로 나는 그런 팀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고, 회의시간마다 그들의 딴짓을 직관하는 일이 늘 즐겁고 기대된다.
번외로 딴짓은 선순환되기도 한다. 웹드라마 작가로 투잡을 하게 됐는데, 신기하게도 경력도 실력도 부족한 나에게 계속 기회가 찾아왔다. 알고 보니 고집과 신념이 있는 정통 작가들과 달리 광고주의 요청을 알잘딱깔센하게 반영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광고인의 관성(?) 덕분인지, 협업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감독님들이 좋게 봐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몇 번의 기회를 더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TVC보다 디지털 필름의 비중이 커지면서 드라마 형태의 스토리텔링 광고를 기획하게 됐다. 광고와 상관없는 딴짓이라고 생각했던 작가 일이, 결국 광고를 만드는 데도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
이렇게 광고는 딴짓의 산물이 되고, 딴짓은 더 나은 광고를 만들게 해주는 선물이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광고회사의 매력이다. 사실은 촬영을 하루 앞둔 오늘, 이 글을 쓰는 것 또한 나에겐 딴짓이다.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광고를 사랑했던 초심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고, 감사한 마음으로 출근할 힘이 생겼다. 전부 딴짓 덕분이다. 그러니까 광고를 하고 있는, 광고를 하고 싶은 모든 분에게 감히 말해본다.
우리의 딴짓은 정당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