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작그룹 박각연 대리
그는 훗날 그의 앞마당에 자리잡을 나무를 미리 심는다. 미래의 집 정원 조경을 염두에 두고 잡은 자리에서 직접 고른 묘목이 든든하게 뿌리 내리는 것을 보면 절로 뿌듯하단다. 어린 묘목에서 앞마당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탐스런 열매를 맺을 아름드리를 보듯 스치는 일상 속 풍경에서 남다른 순간을 포착할 줄 아는 사람, 국내 제작그룹 아트디렉터 박각연 대리이다.
팡 터진 기쁨,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
6월 말 '제56회 칸 국제광고제'에서 좋은 소식이 날아왔다. 니콘카메라의 '센서리 라이트 박스'가 미디어 부문 동상을 수상한 것. 지하철 역 벽면 광고판에 갇힌 사진기자들, 누군가 그 아래 깔린 레드 카펫을 지나가면 경쟁하듯 플래시가 터진다.
순간 광고판 속 사진기자들은 살아나고 그 누군가는 그저 행인에서 영화제에 입장하는 샐러브리티 부럽지 않은 주인공이 된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기억으로 바꾸는 사진의 힘을 카펫 속 센서를 밝으면 플래시가 터지는 기술로 소환한 것. '팡팡' 터진 아이디어는 수상을 부르고 급기야 니콘카메라 일본 본사까지 관심을 보이는 흐뭇한 풍경을 이끌었다.
"드디어 본상이라는 생각에 기분 좋았죠. 약속을 지켰다는 것도 마음 한 켠을 뿌듯하게 했고요."
그동안 '런던국제광고제', '뉴욕페스티벌', '아시아태평양광고제'에서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었다. 그때마다 함께 기뻐하며 다음엔 칸 본상을 타라고 격려해 준 이들에게 내심 빚진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쁨만큼 겸연쩍은 마음도 큽니다. 늘 함께하는 제작팀, 광고팀, 제작기획팀까지 바쁜 시간 쪼개서 마음을 함께 쏟은 덕분인데 저 혼자만 축하받는 것 같아서요."
여전한 것과 변하는 것
그는 상복이 꽤 있는 편이다. 재학 중에도 대학생 광고대상에서 3년 연속 당선됐고 그것이 제일기획 입사로 이어졌다. 광고인을 워너비로 그리는 대학생이라면 그의 노하우가 궁금할 터.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비법이라고 하기에는 싱겁다. 평소 생각하고 관찰한 것을들 광고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것. 굳이 핵심어를 찾자면 '관찰력'이다.
"같은 걸 보더라도 크롭하듯 잘라서 다른 구도로 보면 일상적인 풍경도 비주얼 아트가 되고 비주얼 메시지까지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가 보이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계속 그것만 눈에 들어오잖아요. 그렇게 다른 것을 찾아가면서 아이디어도 확장되는 것 같아요."
요즘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물 바닥이나 벽의 크랙(균열)이다. 그는 크랙이 주는 메시지로 광고를 만들어 또 한번 수상에 도전하려고 하낟. 습관은 여전해도 자세는 달라졌다. 학생일 때 막연히 좋은 아이디어를 좇았다면 실무자가 된 지금은 광고의 기대효과를 염두에 두고 아이디어를 내야 하니 말이다.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광고주의 매출 증대와 이미지 개선에 기여했다고 느낄 때 수상에 버금가는 기쁨과 뿌듯함을 느낀단다 "얼마 전 회의 중이었는데, 광고주가 팀장님께 전화를 했어요. 광고 덕분에 홈플러스가 1위 업체를 두 번이나 이겼다며 기분 좋다고요. 광고주가 좋아하면 저도 덩달아 아주 뿌듯해집니다."
Passion for Ideas
그는 사실 이번 인터뷰가 여러모로 버겁고 부담스럽다고 했다. "비행기의 날개를 그리는지 꼬리를 그리는지도 모른 채 패기로 덤비던 시절은 지났지만 선배들만큼 노련하지도 못한 건 사실이잖아요. 잘 하기 위해서 더 고민하고 더 노력해야 하는 때인데 대가들 앞에서 광고가 어떻고 경력이 어떻고 말한다는 게 조심스럽죠."
잘 하려면 열심히 해야 하고 그러자니 자연히 바빠진다.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경조사조차 못 챙길 때도 있다. 예전 같지 않은 우정에 아쉬움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그런 시기라고 생각한다. 바쁜 것조차 피하지 말고 즐겨야 하는 때. 그러므로 일을 즐기는 열정이 없이는 곤란하다. 열정이 없으면 일도 사랑도 헛물 아니냐는 그에게 열정을 실은 광고는 변화의 바람이 되어 불어온다.
"6년 전 신입사원이던 때와 일주일 전 프로젝트 진행하던 때, 그리고 지금의 저는 다른 사람인 거죠. 아이디어, 성격, 스타일까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일의 결과 하나하나에 모두 영향을 받는다면 자칫 위험할 수 도 있다. 실적이 좋지 않으면 냉소적인 성격으로 변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생각하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는 광고의 특성을 염두에 둔다면 좀 더 적극적인 성격으로 이끌 수도 있다. 그에게는 광고가 업이자 자기계발 수단인 셈이다.
평범한 사물에도 남다른 시선을 부여하는 습관과 끝없이 고민하게 하는 열정은 광고를 넘어 그 자신까지 변화시키는 바람으로 불어온다. 그런 신선한 바람이라면 멈추지 않고 계속 불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