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 탁정언의 아이디어
카피라이터 탁정언의 아이디어
506호
15초의 예술, 광고. 광고의 화룡정점은 ‘죽이는 한마디’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공감을 얻는 카피는 광고 대상에 대한 호불호로 연결된다. 눈과 귀에 착착 들러붙는 카피는 즐겁다. 접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쉽게 카피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카피 발상법 ‘죽이는 한마디’를 출간한 25년차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탁정언씨에게 물었다. “죽이는 한마디 ,어디서 나오나요?”
대학시절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던 탁정언씨는 러시아 문학자이자 시인, 소설가가 될 꿈을 키우고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같은 작가들이 그의 멘토였다. 진로도 대학원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데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하시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취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창의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광고 분야 진출을 시도했죠.” 당시에는 광고동아리나 공모전같은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혼자 머릿속으로 기존 광고의 문제를 분석해서 고치는 작업을 하며 광고대행사 공채를 준비했고 입사에 성공했다.
탁정언의 idea 01
인문학 지식을 축적하다
초보 카피라이터 시절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광고주들은 촌철살인, 죽이는 한마디를 요구했지만 마땅한 것을 내놓지 못했다. 실력을 기르기 위해 그가 했던 일은 방대한 자료 분석이었다. “광고는 아이디어를 먹고 사는 일이라 인문학적 지식과 지혜가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탁정언씨는 언어, 문학, 심리, 철학 등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10년차 카피라이터 시절, 탁정언씨는 슬럼프에 빠졌다. 광고 프로젝트에서 일 년 동안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내리 패배했다. “외부에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창피했고, 스스로 과연 카피라이터로서의 능력이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어섰고, 이후 15년을 카피라이터의 경력으로 채웠다.
격려해 줄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 곁에 많이 있었던 것이 첫 번째 행운이었다. 두 번째 행운은 책이었다.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세상의 모든 멘토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 위기 극복의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진로와 스펙 쌓기에 모든 걸 거는 느낌을 받습니다. 광고홍보 분야에 진출하려는 학생들이 특히 더한 것 같아요. 그러나 광고는 눈에 보이는 현상일 뿐 그 뿌리는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도 카피를 작성할 때 프로젝트와 관련 없는 인문학 책을 랜덤으로 읽으면서 단어를 중심으로 연관된 아이디어를 찾는다. 결국 사람들을 녹이는 한마디는 책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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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의미부여
인문학이 베이스가 됐다면 그 다음은 자신만의 비법을 고안하는 거다. 탁정언씨는 자신이 터득한 카피 만드는 비법으로 ‘내 마음대로 의미 부여하기’를 제시했다. 창의적 발상법과 카피 창작 이론에 대해 쓴 ‘죽이는 한마디’에서 그가 강조한 ‘의미 부여하기’는 대상을 낯선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다.
남과 같아지기, 남들 따라 하기로는 창의력을 기대할 수 없다. 인터넷과 카메라, 컴퓨터 프로그램의 발달로 광고는 누구나 다 할 줄 아는 일이 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때 일반인들이 만든 카피는 광고인보다 더 창의적이었다.
마음대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자신의 기준에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와야 한다. ‘여자에게 아름다운 만남은 예술이다’ 라는 카피보다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는 카피가 설득력이 있다. 예술이라는 단어보다 아내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나만의 비판적인 시각으로 고치고, 또 고치는 도발적인 연습을 하는 것이 (카피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탁정언씨는 내 마음대로 의미를 부여한 카피는 뻔한 주류의 생각을 거스르는 한마디가 된다고 한다. “강물을 따라 흐르는 말보다 강물을 거슬러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연어같은 말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