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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불황(不況)’이라고 합니다. 닉네임은 ‘불경기(不景氣)’입니다.
광고회사에서의 제 위치요? 광고 기획과 크리에이티브 그리고 경영 전반에 관여하는 디렉터라고나 할까요.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늘 광고회사 사람들의 입에서 제 이름이 떠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요즈음 불황이라…’, ‘광고 예산도 불황 탓에…’,‘내년에도 불황이니까 경비부터….’
제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광고 일에 깊게 관여하게 된 것은 아마도 1997년 IMF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땐 워낙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저의 디렉션이 상당히 중요했던 시기였죠. 줄이고, 바꾸고, 버리고…. 그때 광고계 전반에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그 이후로도 제 이름 ‘불황’으로 디렉션이 필요한 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 친구인 디렉터 ‘호황(好況)’은 광고회사에서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일부 업종에서 프리랜서로 뛰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저는 복 받은 셈이라고나 할까요?
내년도 광고 계획을 슬슬 준비하는 요즈음, 저를 찾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 물어 봅니다. ‘불황의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라고요. 그리고는 이렇게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오십니다.
‘아무래도 불황이고 하니 따뜻한 크리에이티브가 각광받지 않을까?’, ‘불황이니까 한가한 기업PR보다 직접적인 상품 광고를 해야겠지?’, ‘불황이니까 일단 예산부터 줄이고 봅시다. 이것도 축소하고 저것도 축소…’, ‘크리에이티브도 너무 벌리지 말고 효율적으로…’.
그런데 잠깐만요. 이런 아이디어는 제가 디렉터 일을 시작하던 IMF 때에도 했던 이야기 아닌가요? 많은 분들이 저를 대하는 게 습관이 돼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의 일도 일이지만 일이란 게 재미가 있어야죠.‘불황 = 재미없는 광고?’ 이러면 제가 섭섭하죠. 저 ‘불황’은 여러분이 보시기에 무미건조하고 계수만 믿는 디렉터 같지만 저는 누구보다도 크리에이티브의 힘을 믿습니다. 안타까운 건 많은 분들이 제 이름만 보시고 지레짐작으로 용기있는 크리에이티브를 주저주저한다는 사실이죠.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저와 미국에서 왕년에 크게 활동하셨던 저의 할아버지‘공황’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불황은 이웃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고, 공황은 자신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다(It’s a recession when your neighbor loses his job; it’s a depression when you lose yours).’ 이 위트 있는 명언을 광고회사 입장에서 곱씹어보면 이렇습니다. ‘불황은 크리에이티브가 설 자리를 잃는 것이고 공황은 대행권을 잃는 것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불황이란 갭(Gap)이 커지는 게 아닐까요?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의 갭, 브랜드와 소비자의 갭이 평상시에 비해 많이 벌어지는 때라는 겁니다.
문제는 그 갭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죠. 아마도 그 갭이란 게 메이커 중심의 생각으로는 절대 좁혀지지 않을 테지요. 그리고 ‘불황이니까 소비자들은 이렇게 움직일 것이다’라는 경험에만 의존한 심리학만으로는 더더욱 그럴 겁니다. 그 갭을 좁혀서 쌀쌀한 시기 소비자와 더욱 밀착하기 위해 결국 남다른 크리에이티브, 그래서 더욱 용기 있고 새로운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일기획의 디렉터 여러분들, 저 디렉터‘불황’과 회의 한번 하시면 어떨까요?
늘 해오던 방식 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말이에요.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디렉터입니다.